강봉균, 경제관료 호남 대부에서 새누리당 선대본부장까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31일 별세
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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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31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고 강봉균 전 장관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를 다시 일으켜세우는 데 헌신했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강봉균 전 장관은 김대중(DJ) 전 대통령 시절 정책기획수석비서관과 경제수석 등을 역임하며 환란 극복에 매진했다.
IMF 외환위기 여파가 지속되던 1999년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겨 경제 사령탑으로 실물경기 회복 전략을 진두지휘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1943년 전라북도 군산부(현 군산시) 출생이다. 1964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해 1969년 행정고시를 통과한 뒤 경제관료로서 공직자 생활을 시작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소장 관료 시절이던 박정희 정부 당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에는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정보통신부(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역임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 전반기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및 경제수석비서관 등 요직을 거친 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자리에 올랐다.
강봉균 전 장관은 장관직에서 퇴임한 후 국회의원에 도전해 17대(열린우리당), 18대(통합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좌관 비리, 본인 및 아들 병역 기피 문제가 확산되면서 불출마 선언을 하며 정계에서 은퇴했다.
잠시 야인 생활을 하던 강봉균 전 장관은 2013년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의원의 경제 자문을 맡으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지난해 4·13 총선 당시에는 여당인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깜짝 등장해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계를 은퇴했다.
가장 최근엔 대한석유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최근까지도 경제 원로로서 정관계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최근 췌장암으로 건강 상태가 급속히 악화해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강봉균 전 장관의 빈소는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의료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월2일 오전, 장지는 고향인 전북 군산 가족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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