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제작사 설립, 외주사 죽이기인가? 제작환경 개선인가?

궁극적인 상생 방안 논의는 여전히 뒷전

장영준 기자 승인 의견 0
(사진=KBS)

[스타에이지=장영준 기자] KBS가 오는 8월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 '몬스터 유니온'을 출범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콘텐츠를 제작해 한류 확산에 기여하고 해외 방송 시장을 확장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더불어 타 제작사와의 공동제작도 활발하게 모색해 상생모델을 구축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구 독립제작사협회) 한국독립PD협회는 그러나 이같은 KBS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KBS가 제작사를 설립하면 외주제작사들은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KBS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해 여기서 나오는 부가 수익까지 모두 챙기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둘 사이의 간극에는 '저작권'이 있다. 현재 저작권은 통상 프로그램을 제작한 외주제작사가 아닌 방송사가 소유한다. KBS가 제작사를 설립해 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우 저작권은 당연히 그들의 몫이 된다. 외주사 단체들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진정한 상생을 원한다면 제작사 설립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드라마부터 예능까지…몬스터 유니온 어떤 회사?

몬스터 유니온은 KBS와 KBS 미디어 KBS N이 공동 출자한 회사다. 사실상 KBS가 만드는 또 하나의 계열사인 셈이다. 여기서 드라마와 예능을 기획 제작하고 다양한 부가판권 및 미디어 사업도 전개할 계획이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이라는 의미의 사명 아래 다양한 인물들로 라인업을 갖췄다. 싸이더스 매니지먼트 본부장 콘텐츠 제작본부장을 거쳐 현재 '화랑:더 비기닝'을 제작 중인 박성혜 대표를 비롯해 서수민 CP 문보현 전 드라마 국장 등이 몬스터 유니온에 합류했다.

KBS는 "몬스터 유니온은 KBS의 핵심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더 나아가 타 제작사와의 다양한 형태의 공동개발 공동제작을 활발하게 모색하는 등 본사의 간섭이 없는 완전한 자율경영을 하게 될 것이다"며 "한류의 관심을 콘텐츠 자체의 파워로 유지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양질의 콘텐츠 제작이 급선무다. 몬스터 유니온은 이를 위해 외부와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협력을 통해 강력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방송 시장 확장에 기여할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

■ "외주 시장 없어질 수 있어"

외주사 단체들은 KBS의 몬스터 유니온 설립 공식 발표 직후 반대 의사를 드러내며 적극 대응에 나섰다. 지난 15일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 이들 단체는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어떻게 독립성을 확보할까라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는 당장 눈앞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에 열중하는 모양새"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자칫 외주 시장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드러냈다.

특히 한국독립PD협회 송규학 회장은 "자체 제작사를 통해 한류 콘텐츠를 직접 만들겠다는 몬스터 유니온의 설립 취지 이면에는 방송사의 여러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다"며 "KBS가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회사를 만들어 제작사들과 밥그릇 싸움을 할 게 아니라 구조조정을 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함께 이미 적은 제작비를 제공하면서 저작권을 모두 가져가는 KBS가 더 많은 권한을 갖기 위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방송 산업 위기에 정치권도 귀 기울여야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사이에는 여전히 수익 및 저작권 배분의 불균형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외주제작사들이 열심히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정작 저작권을 가진 방송사가 부가 수익을 챙긴다. 이 때문에 외주제작사는 소위 '대박'을 내도 손에 쥘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방송사가 제작비를 지급하고 있지만 외주사 입장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 이 제작비에는 직접비와 5~10%정도의 일반 관리비만 포함돼 있다. 기획료 또는 간접 비용은 제외됐다.

방송사의 제작비 의존도를 줄여 외주제작사가 저작권을 확보한 '태양의 후예'. (사진=NEW)

그나마 '태양의 후예'가 이같은 불공정 관행을 개선할 여지를 남겼다. 'PPL 홍수'라는 비판을 듣기는 했지만 중국 자본을 투자 받아 방송사의 제작비 의존도를 줄여 정당한 만큼의 저작권을 확보한 사례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은 극히 일부 작품에만 존재한다. 아직도 구조적인 문제는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KBS가 직접 제작사를 설립하겠다고 나섰고, 외주사 단체들은 반대 의사를 드러내며 정부와 정치권에 SOS를 보냈다.

안인배 한국방송영상제작사 협회장은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조치와 정책이 있어야 한다. 몬스터 유니온을 설립해도 KBS가 절대 살아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정책 쪽에서 방송에 심각하게 접근한 대책이나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방송국도 힘들고 저희도 힘들다. 방송사에서 자기만 살려고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방송사 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 등 모든 분들이 머리를 맞대고 방송 산업을 살리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정책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 해외자본 우려하는 KBS vs 궁극적 상생 요구하는 외주사들

KBS는 이같은 외주사 단체들의 입장을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KBS는 "현재 국내 콘텐츠 제작기반은 해외자본이 밀물처럼 몰려오면서 급속히 잠식되고 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마구잡이식 외주사 사냥은 장기적으로 국내 제작환경의 피폐화를 가져올 것이며, 블록버스터급 한류 콘텐츠가 만들어져도 그 과실은 온전히 해외자본이 가져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며 "국내의 유능한 제작인력도 중국으로 대량 유출되어 이미 많은 작가와 PD들이 중국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반면에 국내 제작환경은 리소스 부족 등으로 제작비가 폭등하면서 킬러콘텐츠 제작은 엄두를 못내는 악순환에 접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는 일부 협회가 몬스터 유니온 설립에는 반대하고 해외자본의 국내 제작기반 잠식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KBS가 몬스터 유니온이라는 제작사를 설립한 것은 이런 현실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에 따른 것이다. 몬스터 유니온은 향후 국내 외주제작사들과 협업을 통해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상생모델을 만들어 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안인배 협회장은 그러나 "중국이 한국시장을 잠식할까봐 KBS가 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공동제작, 기획 등 외주제작사를 통해 협업하는 상생모델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걸 왜 몬스터 유니온을 통해 해야 하나. 그동안은 왜 상생하지 않았나. KBS와 제작사는 상생할 수 없나"라고 재반박했다. 그는 "국내에서 권한이 없었기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방송사에서 저희에게 권한을 줘야한다. 그게 진정한 상생이다. 국내 투자자들도 굉장히 많은 자본을 유치했을 것이고 더 큰 해외시장을 개척했을 것이다. 궁극적인 상생은 제작사에 권한을 주는 것이다"라고 강경하게 맞섰다.

■ KBS와 외주사 간 갈등 해결 방안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양 측의 주장이 점접을 찾기 위해서는 대화가 급선무다. 언론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기 보다는 한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이견을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상생을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느 한 쪽의 이익만을 우선시해서는 절대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안인배 협회장은 "KBS가 자회사 설립을 통해 원하는게 뭔지 알고 싶다.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원한다. 양측이 생각하는 상생에 차이가 있다면 좁히고 맞춰가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스타에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