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의 망령...드러난 김기춘의 실체

'그것이 알고 싶다', 박정희-박근혜 이어온 김기춘 공직 50년 추적

이예진 기자 승인 의견 0

[스타에이지] 1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국정농단 적폐의 심장부에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공직 50년 삶을 추적, 그의 실체에 대해 접근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 제정 작업에 최연소 검사로 참여했다. 고 육영수 여사의 저격범이었던 문세광을 수사하는데 투입돼 자백을 받아내며 고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김기춘 전 실장은 동기들보다 4배수나 앞서 부장으로 승진하고 1975년 37살에 지금의 국정원격인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에 임명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검찰총장(1988), 법무부 장관(1999), 제15~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1996~2008)을 거쳐 2013년 8월 박근혜 정권의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다.

김기춘 전 실장은 고 육영수 여사의 원수를 갚아준 사람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그룹인 7인회중에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 숱한 조작사건의 정점

하지만 김기춘 전 실장은 숱한 조작사건의 정점마다 이름이 등장했다.

‘그것이 알고싶다’제작진은 24살에 사형수가 되어 13년을 감옥에서 보낸 재일동포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강종헌씨를 일본 교토에서 만났다. 11.22 사건이라 불리는 1975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이들을 잠재우기 위해 국가 안보를 핑계 삼아 무고한 청년들을 간첩으로 만들어야 했던 이 사건의 책임자는 그 당시 대공수사국장이던 김기춘 전 실장이었다.

재일동포 유학생들이 학원에 침투했다며 ‘간첩 21명 일망타진’이란 제목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된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건물 지하실로 불려가 거짓 유학을 자백할 때까지 며칠동안 구타를 당했다. 모진 고문에도 거짓 자백을 하지 않으면 일본에 있는 가족들도 간첩방조범으로 소환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간첩 조작은 유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재료였다.

김기춘 전 실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1976년 6월 간첩 조작 사건이 들통날까봐 내무무 국장에게 피의자 입북일자를 신경쓰라고 메모를 보내기도 했다. 메모가 공개됐지만 김기춘은 2006년 한 인터뷰에서 “중앙정보부가서 제일 일성이 간첩은 머리, 두뇌로 잡는 것이지 몽둥이로 잡는 것이 아니다였다. 제가 수사한 사건으로 인권리스트 오른 게 없다. 인권을 남용해서 고문했으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2015년 11월 재일동포간첩 조작사건을 취재중이던 최승호 PD가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김기춘 전 실장에게 당시 사건에 대해 묻자 “알지 못한다. 저하고는 관계없다. 제가 수사한 일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피해자들은 “매일같이 매질 소리와 비명 소리가 가득했다”고 회고했다. 김기춘전 실장은 대공수사국장 4년간 수많은 간첩사건을 조작해 5.16민족상도 받았다. 김기춘 전 실장은 1991년 법무부 장관 당시 노태우의 실정에 항거해 분신한 김기설의 친구 강기훈에게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씌은 총 책임자이기도 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지난해 조작으로 판명났다.

#김영한 비망록 속 장(長)의 지시

지난해 11월 언론에 처음 공개된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비망록. ‘長’이라고 씌인 지시엔 청와대 수석회의 내용이라곤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있었다.

‘비망록에는 “정권.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은 두려움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념 대결속에서 생활”, “가치중립적 타협, 화합은 없다. 회색지대는 없다”, “강철같은 의지로 대통령, 대한민국 보위” 등의 문구와 함께 세월호 여론 조작, 사법부 통제, 문화계 탄압 등의 ‘長’의 지시가 담겼다. '長’은 바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의미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하던 유민 아빠도 비망록에 김기춘 지시사항인 ‘長’이라는 글자와 함께 거론됐다. 2014년 8월22일 단식 농성 40일 째, 유민 아빠가 병원에 실려 간 그 다음날부터 돈 때문에 딸을 파는 파렴치한이라는 비난적인 여론몰이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 무렵 고향에도 낯선 이들이 김영오씨의 신상을 캐고 다녔다. 유민 아빠가 병원에 실려간 다음날인 2014년 8월 23일자 김영한 전 수석 비망록에는 “자살방조죄, 단식은 생명 위해행위이다,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도록 언론지도” 라고 쓰여 있다.

비망록엔 광주비엔날레에 박근혜정권을 풍자하는 초대형 그림을 준비하다 결국 전시를 포기한 홍성담 화백에 대해서도 14차례나 언급돼 있다. 홍성담 화백이 보수단체로부터 고소를 당한 날은 거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에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소’가 적힌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 실체를 부정하고 여론호도...태블릿PC 조작 배후도 김기춘?

김기춘 전실장은 1992년 법무부 장관 시절 14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부산시장, 검찰총장등 기관장 불러 놓고 “민간에서 지역감정 일어나야 된다. 부산놈들 본때를 못보이면 다 죽어야 된다. 언론사에 돈을 주면서 선거운동을 해라”는 등의 발언을 하며 급부상하던 당시 정주영 후보를 누르고 김영삼 후보에 실을 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으로 김기춘의 정치생명을 끝났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관건선거, 지역감정이 화두가 됐던 당시 상황을 김기춘 전 실장은 ‘도청’, ‘정치공작’으로 몰고가면서 상황을 반전시켰다. 부정선거라는 사건의 본질은 흐려졌고 사사로운 아침식사 자리에서 오갔던 사적인 대화로 도청 관계자들만 주거침입 혐의로 구속됐다.

이 사건 이후 김기춘 전실장은 “공직선거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재의 위헌 결정을 얻어내 법을 바꾼다. 검찰에서는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해 공소유지를 할 수 없어 공소를 취소한다.

위기의 순간 단번에 여론을 뒤집는 힘은 정윤회 문건이 드러났을때도 발휘됐다.

2014년 1월 세계일보가 “정윤회 국정 개입”을 보도했지만 박 대통령의 “찌라시 수준에 나오는 일에 흔들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발언 후 문건 외부 유출은 국기 문란으로 프레임이 씌워졌다. 온 여론은 문건이 어떻게 유출됐고 누가 문건을 줬느냐에만 관심을 가졌다. 프레임을 만든 것은 김기춘 전 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비서였다. 조응천 당시 비서관은 무건 작성에 대해 김기춘 전 실장이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김기춘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부인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입수 과정의 적법 절차를 부각 시키며 국정농단이라는 실체적 진실을 부정하려하는 최순실 태블릿PC에 대한 프레임도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 행동전문가가 본 김기춘의 거짓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지난 최순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모르쇠’로 일관하던 김기춘 전 실장의 행동과 과거 인터뷰를 행동분석 전문가를 통해 분석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인터뷰에서 고개를 자주 끄덕였다. 행동분석 전문가는 “보통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이 말을 하면서 고개를 잘 끄덕인다. 이 끄덕임이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믹게 하는 효과가 있다. 자기 합리화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청문회 대답을 할때 김기춘의 오른쪽 어깨가 들썩이는 데 대해 “자신이 하는 말과 몸의 반응이 다르다.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율신경계 반응이다”며 “입술을 축이며 몸을 뒤로 빼는 동작은 초조함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출연진들은 “김기춘, 우병우의 묵인이나 방조 협조없이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불가능하다”며 “적폐의 심층부에 있는 사람으로 총체적으로 단죄받는 것이 옳다. 유신시대부터 무슨일을 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춘 #그것이 알고 싶다 #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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