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 ‘부산행’, 지나치게 재미있고 지나칠 정도로 흥미롭다

국내 최고 좀비 재난 장르…애니메이션 전문 연상호 감독 연출 ‘놀라워’

김재범 기자 승인 의견 0

[스타에이지=김재범 기자] 좀비 장르는 한때 할리우드와 전 세계 영화 시장을 석권했던 히트 아이템이다. 물론 방송에선 ‘워킹 데드’란 걸출한 시리즈가 시즌7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스크린에선 히어로 장르가 굳건한 마당에 좀비는 철 지난 유행이 된지 오래다. 사실 이 소재가 한국영화에서 소화된다고 했을 때 ‘답습’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좀비 소재 사용 설명서는 사실상 더 나올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저 시각적 특수성을 고려한 비주얼 충격에 집중할 뿐이란 생각이었다. 더욱이 할리우드의 그것에 길들여진 대중 트렌드를 만족시켜 줄 좀비 장르가 과연 국내에서 가능할까란 질문에는 ‘불가능’이란 단어 외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상의 설명은 사족(蛇足)이 됐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한국영화 시장이 어느덧 고유명사처럼 사용해 온 ‘역대급’이란 단어의 진정한 주인이 될 듯하다. 재난이 동반된 좀비 장르 영화가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이런 방식으로 등장할 것이란 예상은 그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전무후무한 이 영화의 등장은 앞으로 ‘재난’과 ‘좀비’란 두 단어이자 장르에서 국내 시장 기준점을 마련했다.

먼저 재난 장르에서 ‘부산행’을 소화해 보자. 국내 장르 영화들의 공식은 대동소이하지만 일관된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기승전결이 마련된 그 틀 안에서 인물들의 위치를 지정한다. 하지만 ‘부산행’의 방식은 좀 다르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한 인상적인 인트로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굳이 친절한 해설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좀비’란 소재 자체가 스토리이자 이유가 되고 과정이 되며 또 결과를 저절로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부산행’ 속 재난 사용법이 워낙 영화적이지만 그것이 현실감을 지워낸 판타지로만 다가오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서울역 천안 대전 부산 등 일상적인 공간이 재난 배경으로 등장한다. 경험의 기억이 영화적 콘셉트와 결합되면서 이른바 착각을 일으키는 작동을 하게 된다. 영화적 재난이 현실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을 ‘부산행’은 영리하게 그려냈다.

현실 공포를 건드린 가장 큰 요소는 폐쇄된 공간이 주는 갑갑함이다. ‘부산행’의 진짜 배경은 좁디좁은 KTX열차 안이다. 갇힌 공간 속 사람들과 또 그 공간 속 좀비들의 대결은 오금을 잡아당길 정도로 긴장감을 높인다. 불과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하는 사람과 좀비의 모습. 그리고 달리는 열차 안. 여기에 퇴로가 막힌 심리적 압박감은 영화 속 인물들이 느끼는 긴장감이 아닌 관객들이 고스란히 전달 받게 되는 흥미진진함이다.

긴장감의 또 다른 요소도 있다. 바로 갇힌 공간 속 인간 군상들이 펼치는 잔악함이다. 좀비들과 인간 대치는 사실상 인간성과 비인간성 대결 구도다. 본능만 살아남은 좀비들의 공격성은 사실 이 영화가 주목하는 지점이 아니다. 갇힌 공간 속 인간 생존 본능이 좀비들의 비인간성을 넘어가는 지점이 나타난다. 그 지점에서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 밖 관객들의 감정을 뒤흔들게 된다. 살아남은 인간들의 이기적 생존 본능은 점차 좀비들의 공격을 능가하는 위험 요소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런 스토리를 드러내기 위한 인물 구성 요소도 풍성하다. 관계의 스토리가 만들어 내는 잔가지가 많은 ‘부산행’은 이것을 단순하게 불필요한 ‘잔가지’로 처리하지는 않는다. 석우(공유)와 수안(김수안) 부녀, 상화(마동석)와 성경(정유미) 부부,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의 러브 라인이 폐쇄 공간 속 생존 본능과 연결되면서 극 전체 잔재미를 남겨 준다. 여기에 용석(김의성)의 이기심, 노숙자(최귀화)의 시각적 분산 효과도 스토리 전체 무게감을 분산시켜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볼거리는 ‘부산행’의 메인 메뉴인 ‘좀비’다. 지금까지 할리우드 영화에서 등장했던 좀비 장르의 그것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은 비주얼이다. 빛과 소리에 반응한다는 설정이야 이미 기존 좀비 장르에서 여러 번 반복된 구간이다. 그럼에도 동어 반복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한국 영화 속에서 등장한 좀비 군단의 충격적 비주얼과 완성도일 것이다. 특수효과를 통해 구현된 ‘좀비 피라미드’의 섬뜩함은 ‘부산행’이 좀비 재난 장르를 표방하고 있단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끔찍하고 공포스럽다.

영화 전체가 개인 중심 성장 사회를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해체된 가족주의를 문제 삼고 있기도 하다. 인간 고유 감정인 이기심을 비판한 장면은 그 어떤 비판적 영화 주제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행’의 미덕은 단 한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한국영화로서 이 정도의 장르를 만날 수 있단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소재와 그것의 사용법 그리고 얘기와 인물의 배치가 주는 안정감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애니메이션 전문 연출가인 연상호 감독이 만들어 냈단 점이 경악스러울 뿐이다. 당분간 충무로의 중심은 연상호란 이름 세 글자가 대신할 듯하다. 개봉은 오는 20일.

*P.S 영화 속 등장하는 엄청난 좀비군단의 얼굴을 잘 살펴 보길 바란다. 깜짝 놀랄 인물이 눈을 까뒤집고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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