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도시(Fabricated City)'=감독 박광현/ 출연 지창욱, 심은경, 안재홍, 오정세, 김상호, 이하늬/개봉 2017년 2월9일 /러닝타임 126분/시청연령 15세이상관람가.
'조작된 도시'는 SBS 드라마 '피고인'을 떠올린다. '조작된 도시' 지창욱의 처지가 '피고인'의 지성과 흡사하다. 어느날 눈떠보니 살인자가 되어있고, 모든 증거는 자신을 향해 완벽하게 구비돼 있다.
'조작된 도시'라는 제목 자체가 이와 유사한 일이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함을 시사한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 자체는 현실적합성이 극히 낮지만 감독의 문제의식은 정면으로 현실을 향하고 있다.
'조작된 도시'에서는 게임과 현실이 하나처럼 이어지는 듯하다. 게임에서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 이들이 게임 밖 현실에서도 하나가 된다. 레쥬렉션 팀원들을 게임 밖으로 이끄는 건 위기에 처한 권유를 돕고자 하는 그들의 선한 마음이다.
선한 기운의 '좋음'을 경험한 이들이 순진하리만치 끝까지 그 좋음을 지키기 위해 달려간다. '조작된 도시'의 현실 세계에는 조작자와 하수인과 이들을 물리쳐야 할 권유와 그의 팀원들만 있다.
#. '조작된 도시' 줄거리
권유(지창욱)는 요즘 범람하는 청년 실업자, 백수다.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지만 지금은 출근할 직장이 없다. 권유는 하루 왼종일 피시방에서 온라인 게임에 빠져 산다.
현실은 더없이 찌질하지만 권유는 게임 세계에서 만큼은 권대장이라는 아이디로 팀 레쥬렉션을 이끈다. 자신이 죽더라도 위기에 처한 팀원을 절대 모른 척하지 않는 권유의 리더십에 팀원들 모두 권대장을 따른다.
권유는 어느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피시방 옆자리에 있던 휴대폰을 발견하곤 무시하려던 차에 사례금으로 30만원을 주겠다는 휴대폰 속 여자 주인의 말에 혹해서 그 여자의 집으로 간다.
샤워중이던 여자는 얼굴도 내밀지 않은 채 "침대위에 30만원 사례금 놔뒀다"며 권유와의 짧은 거래를 끝낸다.
다음날 눈을 뜬 권유에게 시커먼 형사들이 밀어닥친다. 형사들은 다짜고짜 권유에게 미란다원칙을 고지하며 살인범으로 긴급체포한다.
감방으로 끌려간 권유는 여전히 영문도 모른채 재판을 받는데, 검사가 제시하는 모든 증거는 권유가 살인범임을 빈틈없이 입증한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권유. 누군가에 의해 권유라는 살인범이 감쪽같이 조작된 것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권유는 교도소를 통제하는 내부 권력자 마덕수(김상호)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한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평생을 억울하게 옥살이하며 양아치들에게 당하며 살 수는 없다.
누명을 벗는 방법은 탈옥해서 스스로 조작자를 찾아 진실을 밝혀내는 길 밖에 없다. 교도소 밖에서 그를 돕는 이들이 나타나는데 바로 게임 속 레쥬렉션 팀원들이다.
하나같이 게임 속 모습과는 정반대다. 아이디 털보는 얼굴을 늘 머리칼로 가리고 사는 대인기피증의 해커 여울(심은경)이고, 아이디 데몰리션(안재홍)은 영화 특수효과 업체에서 막내 스탭으로 일하는 순수 청년이다. 아이디 여백의 미, 용도사, 엄폐, 은폐도 권대장 살리기에 함께한다.
#. '조작된 도시' 등장인물
'조작된 도시'는 박광현 감독이 '웰컴 투 동막골'이후 12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웰컴투 동막골'이 뼈속까지 새겨진 한반도의 이념적 대립에 숨쉴 공간을 만들려는 의지가 담겼다면, '조작된 도시'에는 자본주의 고도화와 첨단과학의 범람 속에서 실종되어가는 선한 사람들의 기운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담겨있다.
'조작된 도시'의 등장인물들은 만화적 요소가 강하면서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캐릭터들로 채워졌다. 대인기피증 해커, 지방대 건축과 교수, 특수효과 말단 스태프, 인터넷 성인 방송 BJ와 감독, 영화 특수효과 팀 말단 스태프, 일이 없어 잘렸지만 천재적인 손기술을 지닌 전 용산전자상가 직원 등.
이들은 자신들의 게임 멤버 리더가 몹시 미심쩍고 부당한 사건에 휘말려 누명을 쓰고 있단 의혹과 확신만으로도 아무런 대가 없이 대장을 구하기 위해 나선 인물들이다.
사회적 잣대로는 하등의 영향력 없는 보잘것 없고 평범한 이들이겠지만, 도리어 그런 이들이 신뢰와 책임감으로 최강의 팀워크를 만들어내고 이로 인해 그 어떤 공권력보다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과정은 논리공학적으론 명백한 허구지만 현실적인 통쾌함와 가슴뭉클한 감동을 준다.
전자오락같은 스토리 구성과 비현실적 액션 연출도 '조작된 도시'에서는 지독한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현실과 게임의 경계가 모호한 '조작된 도시'의 스토리텔링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정교하게 짜여진 틀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반영한다.
권력과 자본, 시스템을 무기로 세상을 마음껏 조작하는 설계자들, 그들로 인해 지배되는 '조작된 도시'에서 끔찍한 고통을 받는 힘없는 약자, 사회적 낙오자들의 탈출구는 이제 가상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조작된 도시'가 영화적인 재미와 통쾌함을 주는 것은 이런 대리 만족감 때문일 것이다.
사진='조작된 도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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