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라이트'는 할리우드 생산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잔잔한 영화다. 제목 그대로 월광소나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어벤저스 같은 영웅도 없고 터미네이터 같은 복잡한 시공간 구성도 없다.
그저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한 하류층 흑인 소년의 인생을 관조한다. 평범한 소년의 삶을 통해 곪아터진 현대 미국 사회 구석구석을 규탄한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다시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그곳 흑인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차별과 아픔, 사랑과 이별, 좌절과 성숙을 그려나간다.
어머니(나오미 해리스)와 함께 외롭게 살아가던 작은 체구의 흑인 소년 샤이론(알렉스 R. 히버트)은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빈 집에 숨었다가 마약상 후안(메어샬라 알리)과 마주친다.
샤이론을 측은하게 여긴 후안은 자신과 여자친구 테레사(자넬 모네)가 함께 사는 집으로 그를 데려가 하루 동안 돌본다.
어린 샤이론은 후안과 함께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수영을 배우고 달빛 이야기를 들으며 이전에 누려보지 못하던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문라이트'라는 영화제목은 이 장면에서 샤이론이 얻은 인생 모티브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와 놀이공간에서 늘 겉돌던 샤이론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케빈(제이든 파이너)을 만나게 된다. 케빈은 샤이론의 유일한 여자이자 영원한 벗이 된다.
'문라이트'는 9살과 16살 그리고 20대 중반의 샤이론을 다루는 3부로 구성됐다.
각 부는 각각 '리틀' '샤이론' '블랙'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모두 샤이론의 이름 또는 별칭이다. 이 호칭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리틀은 남들이 그를 놀리며 낮추어볼 때 쓰는 호칭이다.
흑인이고 동성애자이며 빈곤계층인 그에게 샤이론이라고 붙여진 공식적 이름은 인종 계급 성정체성 등 스스로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조건과도 같다.
블랙은 그의 인종을 떠올리게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에선 케빈이 샤이론을 부르는 호칭의 의미가 더 짙다. 극중에서 오직 케빈만이 샤이론을 블랙으로 부른다. 그리고 블랙이란 호칭만이 샤이론의 의지나 지향과 관련이 있다.
3부에서 샤이론은 블랙의 이니셜인 'B'로 호명된다. 그건 그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인 케빈을 떠올릴 때만 특별한 호칭이 된다.
케빈은 1부 운동장 장면에서 "이봐, 리틀"이라고 외치고, 2부의 학교 복도 장면에서 "샤이론, 뭐해?"라면서 다가오며, 3부의 한밤 전화 장면에서 "안녕, 블랙"이라며 말을 건다.
문라이트의 테마곡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One step ahead'다. 이 곡은 샤이론이 어린 시절 후안 아저씨와 바닷가에서 달빛 이야기를 할 때와 케빈이 일하는 마이애미의 쿠바 식당에서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샤이론이 낯선 아저씨와 엄마가 집에서 함께 마약을 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도 'One step ahead'가 깔린다. 한발짝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걸 테마곡을 통해 결정적인 순간마다 되새기게끔 하는 것이다.
'문라이트'는 희망조차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미국 사회 하류층 흑인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왜 그래야만 하는 지, 강한 저항의식을 깔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달빛을 받아 검은색이 아닌 푸른색 피부로 변한 샤이론은 '블루 아메리카'를 상징한다. 마이애미에서 블루(blue)는 '푸르다' 보단 '우울하다'는 의미가 먼저 연상되는 단어다.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가 27일 열린 제8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수상했다.
'문라이트'는 올해 아카데미 최고 관심작으로 오스카 6관왕을 차지한 ‘라라랜드’를 제치고 최고작품의 자리에 올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 브래트 피트가 '문라이트' 제작자다.
2월 22일 한국에서 개봉한 ‘문라이트’는 개봉 5일째인 26일까지 4만700명의 관객을 모았다. 아카데미 수상으로 향후 누적 관객수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문라이트(Moonlight)=감독: 배리 젠킨스/주연 : 알렉스 R. 히버트, 애쉬튼 샌더스, 트레반트 로즈/국내 개봉: 2017.02.22/러닝타임 : 111분/ 시청연령: 15세이상.
저작권자 ⓒ 스타에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