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사 윌리엄',생계형 기사의 통쾌한 운명 정복기

ebs 일요시네마 30일 '기사 윌리엄' 방송

김현주 기자 승인 의견 0

영화 '기사 윌리엄'(A Knight's Tale)=감독: 브라이언 헬겔랜드/출연: 히스 레저, 마크 애디, 루퍼스 스웰, 폴 베타니, 샤닌 소세이먼/제작: 2001년 미국/러닝타임 : 131분/나이등급: 15세

'기사 윌리엄'은 중세의 기사 이야기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대체로 다 갖추고 있다. 용감한 주인공과 아름다운 귀족 딸의 사랑이 있고, 명예와 지위가 주인공보다 앞서는 연적이 있고, 이 연적은 자기 지위를 이용해 사악한 술수를 부리고,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인물들이 주인공을 돕고. 

그러나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주인공인 기사 윌리엄이 가짜 기사라는 것. 윌리엄은 지붕수리공의 아들이지만 귀족 출신의 기사로 신분을 속이고 마상 창시합 대회에 나간다. 주인공을 수행하는 이들도 이 사실을 안다. 대회 상금을 나눠 갖는 게 이들의 공동목표다. 

여기서 많은 게 달라진다. 주인공 일행에게 왕과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이란 있을 수 없다. 전쟁에서 왕을 구하는 일도 없다. 주인공이 활약하는 건 어디까지나 스포츠인 마상 창시합 대회에서이고, 그의 연적은 마상 창시합 대회의 챔피언이다. 

갈등 요인은 주인공이 우승하느냐와 신분이 탄로나느냐 여부일 뿐이다. 자세히 보면 '기사 윌리엄'은 스포츠 영화에 가까운데, 그 장식물들을 아주 적절하게 활용한다. 그냥 미남 미녀가 아니라 중세시대에 평민 출신의 남자와 귀족의 딸의 만남이어서 특별한 양념을 치지 않아도 설렘이 생기고, 사랑의 아우라가 커진다. 

중세의 신분차별이 불공평한 것이었던 만큼 신분을 속이는 주인공이 밉지도 않다. 주인공 윌리엄의 여정에는 무찌를 용도, 구원할 공주도 없지만 영화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스토리를 2시간에 넘는 긴 시간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고 유쾌하게 그려나간다.

14세기 유럽. 가난한 지붕수리공의 아들 윌리엄(헤스 레저 분)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액터 경의 시종 노릇을 한다. 액터는 귀족 기사들만 참가할 수 있는 마상 창시합 대회를 전전하다가 어느 날 3대 0으로 앞선 상황에서 쉬는 시간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진다. 

마지막 겨루기에서 말에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승리가 보장되는 상황에서 윌리엄은 투구로 얼굴을 감추고 시합에 나가 상대의 창끝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승리를 거둔다. 

약간의 돈을 손에 쥔 윌리엄은 그의 동료인 와트와 롤랜드를 설득해서 다른 시합에도 계속 나가기로 한다. 훈련을 거듭하던 어느 날, 돈만 주면 뭐든 써준다는 시인이라 자칭하는 도박꾼 초서(폴 베타니)를 만나 귀족 증명서까지 위조해서 ‘울리히 폰 리히텐슈타인’이란 이름으로 대회가 열리는 도시들을 순례하며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한편 윌리엄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귀족의 딸 조슬린(섀닌 소세이먼)과 사랑에 빠지고, 연적이자 라이벌인 기사 아드마 백작(루퍼스 스웰)과 충돌한다. 윌리엄이 여러 대회를 거치며 승승장구하자 아드마의 질투심은 점점 커진다. 세계대회가 열리는 런던에 윌리엄 일행이 오자,아드마는  윌리엄의 뒤를 밟아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는데...

영화 '기사 윌리엄'은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의 이야기책 <켄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의 첫 번째 장 '기사 이야기'에서 제목을 따왔으나, 이야기는 많이 다르다. 

작품에 등장하는 시인 겸 도박꾼 초서가 바로 그 제프리 초서를 모티브로 한 인물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렇다’고 가정하고 보는 것도 본 작품을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영화에서 “그 시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라고 소개하는 마상 창시합 대회는 속도감과 파워가 있으면서도 잔혹하지 않고 승부가 분명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대를 초월해 여러 장르에서 흥미로운 요소만 따와 배합하는 연출이, 얼핏 보면 엉성한 것 같지만 솜씨가 상당함을 느끼게 한다. 록그룹 퀸의 "We Will Rock You"가 마상 창시합 대회장에 울려 퍼지면서 관람객들이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는, 시대상으로 따져보면 얼토당토않은 장면이 영화 관객의 흥까지 돋구는 첫 장면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 말이 되는 이 영화의 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대회장에 모였던 관중들이 역시나 퀸의 히트곡 "We are the Champion"을 열창하며(‘챔피언’에는 우승자, 선수권자라는 뜻 외에 지지자, 옹호자라는 의미도 있다) 자연스러운 대미를 장식한다. 

ebs 일요시네마 '기사 윌리엄' 30일 (일) 오후 1시 55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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