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돌연한 죽음에 막힌 세월호 진실

김현주 기자 승인 의견 0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겨레신문과 JTBC는 20일 김 전수석의 휴대폰을 입수해 문자메시지 등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그 중에는 세월호 관련 내용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수사를 총괄했던 김 전 수석의 입을 통해 '세월호 7시간' 등 아직도 안갯속인 미스터리가 일부라도 풀릴 수 있었지만,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공안검사 출신인 김 전수석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할 때만 해도 남부러울 것없이 출세가도를 달리는 듯 했지만, 그의 청와대 '취직'은 결국 불과 2년여만에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불행으로 마감됐다.

김영한 전 수석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 민정수석으로 임명돼 세월호 관련 검찰 수사 등 뒷수습을 맡았다.

지난해 1월 국회 출석 문제와 관련해 돌연 민정수석직을 사임했다.  후임에는 그의 직속 부하였던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승진 임명됐다.

그는 민정수석 사임 1년 7개월만인 지난 8월 갑자기 사망했다. 

이날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김영한 전 수석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 그렇게 만든것, 김기춘, 우병우, 박근혜다" 라며 "민정수석에 임명된 후 아들이 김기춘과 우병우와 불화가 있었다"고 했다.

김영한 전 수석의 비극은  이른바 '정윤회 비선실세' 논란에서 비롯됐다.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는  정윤회가 속칭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십상시'라는 창구를 두고 정기적으로 국정에 개입하는 비선 실세란 요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청와대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총괄 아래 공안검사 출신의 김영한 민정수석이 상황 관리를 맡고 특수통인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직접 특별감찰 등을 이끄는 방식으로 문건유출사건에 대처를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병우 비서관이 직속상관인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실장에게 직보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우병우 비서관이 이 일에 능동적으로 움직였던 반면 김영한 민정수석의 상황 관리는 미흡했고 소극적이었다는 후문이다.

김영한 전 수석은 이를 계기로 청와대 주요 업무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이에 '항명'해 지난해 1월 9일 문서유출사건 관련 국회 운영위원회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상관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 출석을 지시했는데 이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었다. 

그는 이 항명과 동시에 민정수석 자리에서 사퇴했다. 그후 김 전 수석은  술로 밤낮을 지세웠고 결국 지난  8월 21일 급성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장례를 치러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김 전 수석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무언가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정황도 나타났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휴대폰에서 발견된 세월호 특조위 증인 관련 문자메시지.

한겨레신문과 JTBC는 이날 김영한 전 수석이 사용했던 휴대폰(폴더폰)을 입수해 문자메시지 등을 복원해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여기서 김 전 수석이 지난 8월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로 부터 증인으로 출석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처음 확인됐다. 

그가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된 시점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두 달 뒤쯤인 2014년 6월이었다. 세월호 국면에서 검찰과 경찰의 관련 수사를 총괄했던 것이다. 누구보다 세월호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은 수 밖에 없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위원회가 김 전 수석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출석요구서를 보낸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성사되진 못했다”고 말했다. 

출석요구서는 지난 8월 24일 도착했지만, 사흘 전인 21일 김영한 전 수석은 대구에서 갑자기 사망해 버렸다. 

이규연 JTBC 탐사기획국장은 “만약 김 전 수석이 어떠한 폭로를 결심했던 상황이었고, 실제로 진행됐다면 세월호 7시간을 비롯한 숨겨진 진실이 드러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영한 전 수석의 서재에서는 당시 업무일지와 함께 국정원이 작성한 세월호 보고 문건도 함께 발견됐다. 국정원이 작성한 이 문건은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로 규정하고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리거나, 여론을 조작하려 한 정황이 담겨있었다.

결국 '세월호7시간'의 비롯해 아직도 베일에 쌓여있는 세월호 관련 각종 미스터리들이 김영한 전 수석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질 가능성도 있었지만,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의 입은 영원히 열릴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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