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에이지] "이제 보니까 못들었다고 말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언뜻 들어서는 무슨 뜻인 지도 모를 이 말을 한 사람은 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서너달 동안 줄곧 '최순실'이라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뻐팅기던 그가 마침내 '소신'을 뒤집은 것이다.
김기춘씨는 지난 10월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를 보도한 뒤에야 최순실 이란 이름을 알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7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최순실이라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을 수 있느냐"는 국조위원들의 잇딴 추궁에도 그의 입장은 청문회 내내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집 불통 같던 김기춘씨의 이런 입장은 이날 청문회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극적으로 뒤집혔다.
김기춘씨의 '소신'을 꺽은 것은 이날 밤 10시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문회장에서 튼 한 영상 때문이었다.
2007년 7월 19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 검증 청문회를 녹화한 것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이 당 안팎에서 선임한 청문위원들이 대선 예비후보로 나선 박근혜 후보를 검증하는 자리였다.
영상 중간 부분에는 박근혜-최태민 약혼설에 대한 검증 과정이 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최순실의 관련 증언과 최순실의 재산 취득 과정 등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다.
영상에는 김기춘씨가 맨 앞자리에 앉아서 자료를 살펴보는 장면도 나온다.
김기춘씨는 당시 박근혜 후보의 선거대책부위원장 겸 법률자문위원으로 캠프의 핵심 멤버였다.
결국 김기춘씨는 최소한 9년 전 최순실의 이름을 들어본 것만은 확실해진 것이다.
박영선 의원이 이 부분을 꼭 찍어서 제시하자, 궁색해진 김기춘씨는 "최순실이란 이름은 이제 보니까 내가 못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고 빙빙돌려 말했다.
이날 초지일관 근엄한 표정과 음성으로 ‘모른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던 김기춘씨는 처음으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자리에서 들썩거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는 "내가 최순실을 모른다고 한 것은 만나거나 서로 연락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며 서둘어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름도 모른다던 그의 말은 이 순간에 완전한 거짓으로 증명돼 버린 것이다.
박영선 의원이 이런 '개가'를 올린 것은 '네티즌 수사대' 덕분이었다.
영상을 찾아낸 주인공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주식갤러리 유저들이었다.
이들은 이날 밤 9시쯤 박영선 의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이 영상을 제보했다.
제보를 받은 박영선 의원은 불과 한 시간만에 핵심 부분을 찾아내 김기춘씨를 추궁했고 결국 '역사에 남을' 증언 번복을 이끌어냈다.
사진=주식갤러리 회원들의 제보 문사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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