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계엄령, 30년전 전두환 랑데뷰?

김현주 기자 승인 의견 0
   
 

[스타에이지] 1987년 6월 19일 청와대에서 제임스 릴리 주한 미국대사가 전두환 대통령에게 편지 한장을 건넸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친서였다. 정치범 석방과 자유언론 신장을 권고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은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계엄령 선포는 초읽기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편지를 다 읽자 릴리 대사는 '본론'이 담긴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계엄령 선포는 한미동맹을 저해할 수 있으며 1980년 광주에서와 같은 불행한 사태를 재발할 수 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90분 면담동안 내내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날 밤 최광수 외무장관의 전화가 릴리 대사에 걸려왔다. "계엄을 선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임스 릴리 전 주한미국 대사의 회고록 '아시아비망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6월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대부분의 시민들은 '설마' 했다. 사실상의 군사통치를 의미하는 계엄령을 그렇게 쉽게 발동할 수 있겠느냐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릴리 대사의 이 회고록 덕분에 당시 시민들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던 지 밝혀진 셈이다.

1987년 당시 6월10일 1차 국민평화대행진 이후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시민항쟁은 6월26일 2차 국민평화대행진으로 정점을 찍었다.

전국에서 2차 평화대행진에 참여한 시민 수는 6월10일 1차 평화대행진 때의 3배가 넘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결국 사흘 뒤인 6월29일 전두환 정권은 노태우 민정당 대선 후보의 입을 통해 직선제 개헌 수용 등 사실상의 대국민 '항복선언'을 하게된다.

◆ 장윤기, 조응천 이어 추미애 대표도 계엄령 언급

국내에 계엄령이 마지막으로 발동된 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 조치였다.

당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광주 등지에 발생한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발동한 것이었다.

이런 계엄령이 내려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아직은 풍문 수준이지만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청와대와 친박 세력이 대대적인 반격을 노리는 징후들이 나타난 시점이어서 사태 추이에 관심이 집중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박사모를 시켜 물리적 충돌을 준비시키고 시간을 끌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사정기관에 흔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같은 당 조응천 의원도 지난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비상계엄령'을 언급했다.

조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엘시티 비위 엄단 지시와 관련해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진다. 내치는 맡기겠다더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라며 “혹은 내치에까지 관여하는 모양새에 격분한 시민들이 과격 폭력시위에 나서면 이를 빌미로 비상계염 발동하여 판을 엎는 꼼수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장윤기 전 법원행정처장도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찰력으로 통제가 되지 않으면 계엄이 선포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내란 예비, 음모나 선동, 선전으로 몰릴 염려가 있고요"라면서 우려의 뜻을 밝혔다. 

장 전 처장은 이어 "그동안의 경험이 많아 박 대통령이 4ㆍ19 때처럼 물러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면서 시산혈해라는 불길한 말이 떠올랐는데, 매사에 자제가 필요한 때입니다"라고 말했다. 

◆ '민심자극-유혈충동 유발-계엄령' 시나리오 우려 

이런 우려는 청와대와 친박 세력이 최근 국면 전환을 노리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사분란하게 나타나면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집권 여당의 최고 수뇌부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인민재판', '헌정질서 중단' '좌파 단체 배후' 등 촛불민심으로 자극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퇴진 주장은) 인민재판에 다름없다"며 목소리를 높혔다. 

조원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제1야당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취소하는 과정을 보면서 더민주보다 더 힘있는 배후세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그 배후세력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대한민국 헌정 중단의 혼란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좌파 시민단체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친박 의원들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16일 "광화문 촛불 집회에 불순 세력이 포함돼 있었다"며 경찰에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다"고 했다. 

김진태 의원은 17일 최순실 특검 법안 처리에 반대하면서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고도 했다.

김 의원이 말한 '불순세력 개입' '바람'이 무얼 염두에 두고 한 것인 지를 싸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수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검찰에 엘시티 수사를 지시하는 등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의 행위를 최근 잇따라 취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극력지지자들인 '박사모'는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다. 3차 촛불집회가 예정된 19일 오후 비슷한 시간대에 서울역과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맞불 시위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이런 탓에 '촛불민심 자극-폭력사태 유발-계엄령'  시나리오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전청래 전 의원은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그들은 폭력집회사태를 노리고 있다'는 글을 통해 "박사모, 어버이연합, 엄마부대를 이용해 맞불집회를 열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촛불시민들을 자극해 폭력집회를 유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지혜롭고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청와대는이날 추미애 대표의 '계엄령' 발언과 관련해 "유감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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