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출범이래 최초 이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박영수 특검이 구상할 수 있었던 가장 이상적인 프로세스는 '이재용 구속→ 박근혜 대통령 조사→현재 3월 중순 탄핵결정→특검에 의한 박 대통령 사법처리' 였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이젠 한낱 꿈같은 가상현실이 될 공산이 커졌다.
박영수 특검의 성패는 박근혜 대통령-최순실과 삼성의 거래를 뇌물죄로 단죄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의연 판사의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으로 특검은 예상 프로세스의 첫 관문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특검은 2월초순까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할 계획이라지만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지조차 의문이다.
박 대통령측에서는 "특검이 오버하고 있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지 않느냐"는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에도 조의연 판사의 영장기각 결정은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탄핵사유 중 뇌물죄라는 핵심적인 법률위반 사항에 대해 헌재가 유죄심증을 갖기는 어렵게 됐다.
박 대통령의 탄핵사유로는 생명권 침해와 언론자유 침해 등 헌법위반 사항도 있지만 이것만으로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박사모를 비롯한 친박세력은 조의연 판사의 이번 영장기각을 단순히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불구속 결정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무죄 판결로 받아들일 것이고 이를 근거로 헌재에 대한 탄핵기각 압박도 강도를 높힐 것은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수백만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 낸 정경유착 적폐 해소의 기회가 조의연 판사라는 한 법관의 '법리적 판단'과 함께 물거품이 되는 순간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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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으로 부터 구속 영장 기각 처분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사진=포커스뉴스> |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조의연 판사는 19일 새벽 4시50분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조의연 판사가 밝힌 기각사유는"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결국 뇌물공여죄의 성립요건인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그래서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순실 개인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에 주거나 주기로 약속한 430억원을 뇌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조의연 판사의 결론이다.
'원칙주의자'라는 조의연 판사가 18시간 동안의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인 만큼 법리적으로는 타당한 결론일 수 있다.
하지만 조의연 판사가 지적한 '대가성'이나 '부정한 청탁'을 특검이 제대로 소명하지 못한 것이 이재용 부회장 영장기각의 사유라면, 이미 구속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건은 어떻게 된 것인 지 이해가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의연 판사는 특검 구속 1호인 문형표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지난달 30일 발부한 바 있다.
특검팀은 지난달 29일 문형표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조의연 판사는 다음날인 오후 3시 문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실질심사를 열었다.
당시 조의연 판사는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문형표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문형표 전 장관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를 통해 산하기관인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았고 구속영장에 적시된 혐의내용도 이와 관련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였다.
결국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문형표 당시 복지부장관이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을 압박해 삼성편을 들도록 했다는 것을 조의연 판사도 인정한 것이다.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 최순실의 독일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뭉터기 돈을 갖다 바친 것은 전부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합병안이 가결되고 난 뒤, 즉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구도가 완성된 다음에 이루어졌다.
주무부처 장관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에 부당한 압력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이재용의 삼성 승계'와 '박대통령-최순실에 대한 430억원 헌금' 사이의 대가성도 자연스럽게 인정된다는 것이 문 전 장관 구속 당시 나왔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대가성'만 인정되면 제3자 뇌물공여죄에 필요한 '부정한 청탁'은 소명이 없어도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하는 데는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조의연 판사는 '대가성' 마저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건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특검이 수사동력을 이어가려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전담 판사가 3명이 있지만,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더라도 그 담당은 다시 조의연 판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조의연 판사가 '대가성'이나 '부정한 청탁'을 문제삼아 다시 영장을 기각하는 일이 있더라도 특검으로선 최소한 자체의 정당성은 스스로 주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조의연 부장판사는 박영수 특검이 청구한 '최순실 게이트' 관련 구속영장 10건 가운데 6건을 담당했다.
이재용 부회장 영장이 조의연 판사가 맡은 6번째 영장이었다.
조의연 판사는 특검이 청구한 첫 구속영장인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 4명의 구속영장은 발부했고,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과 이재용 부회장 등 2명의 영장은 기각했다.
조의연 판사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조의연 영장담담 판사는 충남 부여 출신으로 1998년 대구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해 서울고등법원 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거쳐 지난해 2월 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전담 판사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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