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밀은 없다’ 손예진, 그녀가 느낀 모성의 밑바닥

일반적인 개념 벗어난 새로운 모성 '경험‘

김재범 기자 승인 의견 0
사진=CJ엔터테인먼트

[스타에이지=김재범 기자] 감독들도 상대 남자 배우들도 하다못해 관객들도 사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배우의 얼굴에서 어떤 스토리를 상상해 내려는 습관을 갖고 있단 점 말이다. 조금 정확하게 말하면 여배우의 얼굴을 통해 분위기를 예측하게 된다. 이 영화가 어떤 장르의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포스터 속 여배우, 혹은 한 영화 속 주연 여배우는 ‘퀸’이란 특별한 존재로 불리게 되는 다반사의 경험을 대중들은 한다. 여배우의 얼굴은 때로는 한 작품 속 하나의 상징이며 스토리이고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비밀은 없다’의 포스터 속 손예진의 얼굴은 그래서 중요했다. 그의 눈빛과 시선 그리고 온 몸을 통해 전하고 싶은 압도적인 아우라는 지금까지 기억 속의 또 경험 속의 손예진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공교롭게도 영화가 개봉 후 손예진과 만나게 됐다. 개봉과 동시에 이 영화는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극명하게 갈리는 호불호의 평가 속에 영화는 예상 밖으로 저조한 성적을 냈다. 손예진이란 ‘멜로퀸’의 스릴러 선택이란 점도 관람 포인트로 작용할 듯했다. 상대역인 김주혁과의 케미도 볼만하단 사전 평가가 나왔다. ‘미쓰 홍당무’로 데뷔한 이경미 감독 연출력도 기대이상이란 평가가 덧붙여 나왔던 시기다. 모두 정식 개봉 전 얘기였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 마음과 관객들의 마음이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좋은 평가는 그 영화를 만든 모두의 몫이지만 나쁜 평가는 전적으로 주연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주혁 오빠의 잘못도 아닌 전적으로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 색다른 지점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주변에서 좋은 평도 들었고, 나쁜 평도 들었어요. 좋은 것은 모든 배우 스태프와 나눠야 하지만 나쁜 평은 오롯이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스타일 자체가 워낙 독특하다보니 영화 자체가 생소하게 다가오는 것도 있는 듯하다. 때문에 극단적인 평가를 받아든 현재의 모습이 사실 그리 낯설지는 않게 다가왔다. 사실 손예진도 이런 평가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풀어내는 방식, 연출을 맡은 이경미 감독이 생각하는 연홍(손예진)의 모습은 배우 손예진과는 많이 달랐단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 이경미 감독의 확고한 스타일

“먼저 선택 이유를 밝혀야겠죠(웃음). 왠지 특별한 느낌이 들었어요. 한 가족의 얘기인데 그들의 얘기를 전혀 다른 방식 너무도 색다르게 느껴지도록 풀어냈잖아요. 그동안 멜로에 특화된 얘기를 많이 들어왔던 저인데 제 속에서 어떤 새로운 면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기대가 개인적으로 컸죠. 하지만 현장에선 이 모든 기대가 훨씬 더 증폭됐다고 할까요. 하하하. 사실 촬영 초반에는 거의 멘붕이었어요.”

그가 말한 멘붕의 이유는 이경미 감독의 확고한 생각 덕분(?)이었단다. ‘비밀은 없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이 감독은 손예진의 말을 빌리자면 전형적인 타입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고. 물론 그 전형적이란 단어가 나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감독이 이 영화에서 배우들에게 주문하고 요구했던 것이 그런 지점이었다. 손예진이 생각하고 준비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너무도 다른 모성을 그리려고 생각하셨어요. 연홍에 대한 모습이 너무도 확고하게 머릿속에 그려져 있으시더라구요. 디테일한 부분까지 너무 세밀하게. 제가 그린 연홍과는 너무도 달랐죠. 지금까지 봐온 전형적인 모습의 모성은 우리들에게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이 생각한 연홍의 모습은 한 번도 본적 없는 그런 엄마를 원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떠올린 연홍의 이미지와 감독님이 생각한 연홍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완전히 달랐던 거죠. 쉽게 말해 딸을 잃어버린 엄마라면 무너지잖아요. 연홍은 그렇지 않구요. 이게 완전히 낯선거죠. 관객들에겐.”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 속 손예진의 얼굴, 아니 ‘연홍의 얼굴’은 폭발 직전의 고요함을 보는 듯했다. 영화 초반 잠시 등장했던 우리에게 익숙한 손예진의 얼굴은 불과 10여분 정도였다. 그 이후는 눈물이 고인 채 슬픔을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 슬픔 속에선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 분노 속에선 집착이 서려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모성의 그림은 손예진이란 배우를 통해 거의 완벽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경미 감독이 생각했던 그 모습이었다. 물론 그것이 쉬운 작업은 결코 아니었다.

“배우로서 연홍이란 캐릭터는 정말 매력적인 지점이 많죠. 하지만 그 감정을 유지한 채 몇 개월의 촬영 기간을 버틴다는 건 고문이에요. 고문(웃음). 정말 혼자 그 안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잘못하단 큰일 날 것 같더라구요. 하하하. 촬영 중간 중간 혼자 빠져 있지 않으려 스태프와 농담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극단적 스트레스를 조금씩은 풀어갔어요. 물론 촬영을 하면 그 순간 집중도 하구요. 쉴 때와 집중할 때의 배분을 좀 명확하게 하는 편이에요. 글쎄요. 지금 생각해도 제가 좀 미쳐 있었던 것 같기는 해요. 하하하.”

사진=CJ엔터테인먼트

■ 마지막 장면 촬영 뒤 감정 폭발

연홍으로서 살아간 촬영 기간 동안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배우로서 이경미 감독과의 소통도 조금은 힘에 부쳤었다. 이 감독 스타일이 상당히 추상적이란 말이 나왔던 적이 있다. 쉽게 말해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지시하는 디렉션(촬영 시 연기 지도)이 그랬다고. 물론 손예진이 이 감독의 이런 스타일을 너무도 잘 소화해 냈단다. 이점은 이 감독이 스태프 및 주변 배우들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하하. 맞아요. 감독님이 정말 어렵게 말씀을 하시는 편이었어요. 너무도 자기만의 세계관이 확실하신 분이라(웃음). 사실 그런 확고함이 있으니 ‘비밀은 없다’와 같은 스타일이 나온 것 아닐까 생각해요.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이 감독님의 그런 스타일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일반적인 스타일과는 너무도 달라서 제 스스로 흡수하는 것 자체가 결코 쉽지 않았어요. 제 생각과 감독님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게 너무 어려웠죠. 하지만 나중에는 모든 게 감독님의 생각이 맞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사진=CJ엔터테인먼트

생소한 스타일이었지만 고생한 보람도 분명히 있었다. 특히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왔던 감정의 응축이 폭발해 걷잡을 수 없었다고. 그 장면을 위해 꼭 달려온 것만 같았다며 한 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 마지막 장면을 찍으면서 너무 슬펐어요. ‘엄마는 좋다고 하디?’란 그 질문이 연홍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아픈 상처였겠지요. 그 장면을 연기하면서 몇 개월 동안 치열하게 살았던 게 한꺼번에 밀려오더라구요. 감정이 북받치면서 정말 힘이 들었어요. 내가 내 영화를 보고 슬펐다고 하면 웃기지만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게 있어요. 배우는 자기 영화를 객관적으로 절대 볼 수가 없거든요.”

여러 질문이 나오고 ‘비밀은 없다’의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손예진과의 대화에서 꼭 빼놓으면 안 될 한 가지가 있었다. 멜로의 여왕이란 타이틀이다. 청순의 아이콘이란 별명도 아직까지는 유효하다. 손예진은 박장대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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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멜로의 여왕’ ‘청순의 아이콘’ 너무 좋다. 계속 갖고 가고 싶어요(웃음). 다만 쑥스러울 뿐이지요. 하하하. 데뷔 이후 영화는 거의 멜로였어요. 그때는 여주인공은 죄다 죽는 설정이었잖아요. 왜 그렇게 죽인데요. 하하하. 근데 요새는 멜로 거의 못했네요. 사랑은 누구에게나 항상 꿈이잖아요. 저도 꿈꾸고 있구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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