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이 풀어낸 한국 현대사의 질곡

김훈, 6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공터에서' 출간..1920~1980년대 마씨 집안의 삶

이혜원 기자 승인 의견 0

베스트셀러 작가 김훈 씨(72)이 가 '흑산' 이후 6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공터에서'(해냄출판사)를 출간했다. 한국전쟁, 4·19, 5·16, 5·18, 6·10을 보고 겪은 작가 김훈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이다.

'공터에서'는 평범한 마 씨 집안사람들이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질곡의 시대를 살아오며 겪는 고단한 삶을 담은 작품이다. 이승만, 박정희 등을 거쳐 국가권력이 옮겨가는 것을 목격하며, 그에 따라 영광은 작고 치욕과 모멸은 많은 우리 삶의 꼴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자전적 경험을 실마리로 집필한 작품이다. 아버지 김광주의 젊은 날을 담는 등 김훈의 자전적 요소가 일부 가미됐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을 마씨(馬氏)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아들들의 삶을 통해 이야기한다. 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 일대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겪어낸 파란의 세월,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간과 연이어 겪게 되는 한국전쟁, 군부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운명,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 세상을 떠도는 어지러운 말들을 막겠다는 언론통폐합, 이후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사건들을 마씨 집안의 가족사에 담아냈다.

1948년생인 김훈은 기자생활을 거쳐 2004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과 뛰어난 문체 미학을 보여주는 소설가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김훈은 고려대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하고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편집국장,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했다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이다. 1980년 한국일보 재직시 제5공화국 때 전두환 찬양기사를 써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훈은 1995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으로 소설가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충무공 이순신의 생애를 실존적 고뇌자의 삶으로 묘사한 ‘칼의 노래’ (2001). 가야금의 명인 우륵의 이야기 ‘현의 노래’(2004). 화장(火葬)을 여성의 화장(化粧)과 대비시켜 중년남자의 심리를 묘사한 ‘화장(火葬)’ (2004) 등이 있다.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화장(火葬)’으로 제28회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김훈은 6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터에서’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광화문 집회, 태극기 집회에 관찰자로 둘다 가봤다며 태극기와 성조기와 십자가를 흔드는 것을 보고 70년이 지났는데 왜 달라진 것이 없나싶어 서글펐다고 말했다. 

김훈은 "내 또래들은 태극기 집회에 가는데 이들은 '우리가 쌓은 게 다 무너져간다'며 '기아'의 정서를 드러낸다. 우리 어렸을 때는 '기아'와 '적화'(공산화)가 가장 두려운 말이었다"며 "난방을 철철이 때고 밥이 넘치는 시대를 살면서도 저 정서가 있구나 생각하니 해방 70년이 (지났는데도) 엔진이 공회전하듯이 같은 자리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70년의 유구한 전통은 갑질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수십만 명이 추운 겨울날 걸어서 피난을 가는데 고관대작들은 군용차와 관용차를 징발해 응접세트나 피아노까지 싣고 먼지를 날리며 피난민들 사이를 헤치며 남쪽으로 질주해 내려갔다"며  "그런 야만이 계승되어 광화문에서 분노의 함성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김훈은 "위정자들이 저지른 난세를 광장의 군중들이 함성으로 정리한다는 것이 크나큰 불행이지만 그 속에 희망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분노의 폭발로 끝나지 말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힘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 연결은 정치지도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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