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체류중인 최순실씨가 이번에 드러난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법적으로 문제될 지도 몰랐고 범법행위를 저지른 적도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세계일보>가 27일 보도했다. 최씨가 국내 언론에 정식 인터뷰 형식으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5일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도의적인 책임은 몰라도 법적으로 문제될 만한 행위를 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였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도 26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최순실씨 경우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 정유라씨 이화여대 특혜 등 각종 사안과 관련해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막상 형사처벌 차원에서 놓고 보면 명백하게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단정할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게 법조계 인사들의 전언이다. 법을 무시하고 법위에 군림한 듯한 정황은 많지만, 죄형법정주의라는 엄격한 관점에서 보면 범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직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박 대통령 스스로도 '자문을 받기위해 연설문 등을 최씨에게 전달했다'고 인정했다. 최씨도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JTBC가 보도한 문제의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이 들어있었던 테블릿 PC에 대해서는 자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연설문 등을 받아본 사실은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나는 태블릿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것을 쓸지도 모른다. 제 것이 아니다. 제가 그런 것을 버렸을 리도 없고, 그런 것을 버렸다고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 남의 PC를 보고 보도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세계일보>는 전했다.
하지만 최씨는 '구체적으로 대통령 연설문의 무엇을 어떻게 수정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대선 당시인지 그 전인가 했다. 대통령을 오래 봐 왔으니 심정 표현을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드리게 됐다. 그게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가기밀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대통령이 아직 발표하지 않은 연설문이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느냐는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법 규정을 문언상 그대로 해석해 적용하면 해당된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맞다는 의견이 많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기록물이란 대통령(대통령 당선인 포함)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대통령, 대통령의 보좌기관, 자문기관, 경호기관에서 생산·접수하여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 및 물품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발표전 연설문 등도 '대통령' 또는 '보좌기관(수석이나 비서관 등)' 이 '생산'해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으며, 누구든지 무단으로 대통령기록물을 파기·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하거나 국외로 반출하면 형사처벌(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하도록 하고 있다.
법규정이 '누구든지'라고 하고 있는 만큼 대통령도 유출죄의 행위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명백하다.
다만, 박 대통령의 경우 아직 현직에 있으므로 헌법상 대통령의 형사소추 면제 규정에 따라 지금은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을 수 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직 당시 있었던 박연차 사건 등으로 인해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았던 것 처럼 박 대통령도 유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이들 문건을 최씨에게 건넨 청와대 참모들과 이를 받아본 최순실씨도 대통령기록물 유출죄의 공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대통령은 수사대상이 아니다'고 한 것은 헌법상 대통령의 형사소추 면제권의 범위에 기소나 재판뿐아니라 수사도 포함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부 학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대법원 판결이나 헌법재판소 결정 등 규정력 있을 만한 전례가 없는 상태이며, 상당수 헌법 및 형법 학자들은 대통령의 형사소추 면책특권에는 수사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경우 검찰이 설사 대통령기록물법은 적용하지 않더라도 형법상 공무상 비밀의 누설죄는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형법은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하고 있다.
최씨에게 전달된 문건 중에는 정부차원 비밀 대북 접촉 정보 등 초특급 기밀 사항도 포함돼 있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상태다.
결국 청와대 연설문 등 문건 유출과 관련해 박 대통령을 수사 대상에 포함하느냐 마느냐는 것은 검찰이나 특검의 의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 중견 변호사는 "최씨가 박 대통령한테 아래라 저래라하는 관계라는 둥, 최씨가 '팔선녀' 라는 모임까지 가동하며 국정을 논했다는 둥 민주주의 체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 검찰이 면책특권을 확대해석 하면서까지 진실 규명을 피한다면 국정혼란은 더욱 심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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