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묵칼럼] 정치문화와 헌법관습이 변해야 가능한 대연정

김현주 기자 승인 의견 0
박혁묵 변호사(뱅가즈법률사무소)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국가의 주요  정당들은 선거에서 독자적으로 여대야소 정부를 완성하기위해 노력하는데 이것이 실패할 경우  주요정당들은  다른 정당과 연합하여 총리를 뽑고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주요정당들이 이념적 성향이 비슷한 다른 군소 정당과 합하여 과반수 의석을 살짝 넘기는 경우는  최소승리연정이라 하고 과반수를 훨씬 초과하는 경우에는 잉여연정이라 한다. 대연정(大聯政, Grand Coalition)은 이념적 성향이 다른 2개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경우이고, 거국일치연정은 모든 정당이 정부에 참여하는 형태이다.  

대연정이나 거국일치연정은 이념적 차이를 넘어 국가적 통합과 안정이 절실한 전쟁이나 경기 불황과 같은 국가적 위기 때  등장한다. 독일의 경우 최근 대연정이 자주 등장하였는데 메르켈 총리가 이끈  1차내각 (2005~2009)과 3차내각(2013~현재)이 독일기독교민주연합과 독일 사회 민주당의 좌우 대연정이다.

대연정을 구성한 메르켈 3차내각의  장관분포를 보면 기독 교민주연합과 자매정당인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이 10개, 독일사회민주당이 6개의 장관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장관자리 상대 비율(10:6)과 총선득표율의  상대 비율(41.5:25.7)은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장관을 임명하여 정부를 구성할 권한을 갖기 때문에 의원내각제 국가와 같은 대연정이 법적으로 보장될 수는 없다.   우리헌법이  국무 총리 임명에 국회동의를 요구하고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장관)제청권과 내각 통할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국무총리제도를  헌법에 맞게 운영한다면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다수파 또는 다수파연합이  내각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이를  의원내각제국가의 총리임명이나 연합정부와 같다고 볼 수 없다. 

그러면 우리 헌법 하에서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연합정부구성이  전혀 불가능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대통령이 국무총리지명권을  사실상 포기하고 국회다수파 연합이 국무총리임명권을 행사하도록 하여 그렇게 뽑힌 총리에게 헌법상 보장된 장관 제청권과 내각 통할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도록 하면 국회다수파연합이  내각을 구성하고 정부를 운영하는 연합정부가 가능하다.

국회의 국무총리임명은 대통령의 자발적인 권한행사 자제에 의해 유지되므로 불안정한 것이지만 이러한 국정운영이 정치문화로 정착되고 관습 헌법으로 자리잡는다면  법적으로 보장된 연합정부와 마찬가지로 제도화될 수 있다.

국무총리의 장관임명체정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었지만 지금까지 사문화되어 형식적 절차에 그쳐왔는데 이와 정반대 방향으로   국무총리권한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있다면 국회의 국민총리임명동의권을 사실상의 임명권으로 운용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정치문화와 헌법관습으로  제도화된 연합정부를 내각제 국가의 연합정부와 같다고 본다면 현행 우리 헌법에서도 대연정은 가능하다.

현재 정당의 의석분포를 보면 민주당 121석, 자유한국당94석,국민의당 38석, 바른정당32석,정의당 6석이다. 민주당이 국민의 당이나 바른 정당과 연합하면 최소승리연정, 민주당이 자유한국당과 연합하면 대연정, 모든 정당과 연합하면  거국일치연정(거국내각)이 된다.

박근혜 정권 퇴진 이후 우리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제1의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국민화합에 바탕을 둔 국가안보와 경제위기 극복  아닌가?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더 위기상황이어서 대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 국민들이 만들어준 국회 의석분포상 국가를 가장 잘 이끌어나갈 정부를 구성하는데 공감대가 있어 대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대내외적 위기상황과 국회의석분포를  감안하면 다음 대통령은 대연정이 아니라 거국일치연정을 구성해도 국정운영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유력 대권 후보인 문재인은 박근혜게이트가 터져 나온 초기 무렵 거국내각(거국일치연정) 구성을 제의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어 퇴진한다고 국가적 위기상황이 해결되진 않는다. 박근혜정권  적폐청산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불과하기 때문에  안보와 경제위기해결, 불공정과독점 타파, 임금양극화 해소, 재벌개혁 , 사회안전망 구축, 남북관계 개선  등 시대적 과제로  제기되는 어느 하나의 과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일부 정치선동가는 박근혜 정권 적폐만 청산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 호도하면서94명의 국회의원이 소속된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을 청산하자고 하는데  참으로 무책임한 주장이다.  

국회의원을 개별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은 범죄로 인한 법원 판결 밖에 없고 정치적으로 한꺼번에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은  국회의 자발적 해산이다. 둘다 현재 시점에서 실현불가능한 방법이다. 국회가 박근혜 탄핵소추결정 후  국정감시와 견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을 통감하며 국회를 자발적으로 해산하였다면 새누리당을 국민의 힘으로 청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조기 대선에만 관심있었던 민주당 주류는 그러한 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민주당 주류의 일부 정치인들이 실현 불가능한 새누리당 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일 뿐 아니라 정치적 반사이익만 챙기려는 주장이다.

다음 대통령은 대통령탄핵으로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키면서 산적한 시대적 개혁과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대통령이 소속당과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일부 정당들과 협치를 하여 국회의 과반수를 가까스로 넘긴다고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대통령이 소속당과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당들과만의 협치를 선언한 순간 국회는 5년 내내 소모적인 정쟁의 장이 될 것이고  시청과 광화문은  1년 365일 시위로 몸살앓게 될 것이다. 

국민화합을 통해 산적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다음 대통령에게 대연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다음 대통령에게 국회의 절대적 지지와 국민적 합의를 통해 개헌작업을 완료해야할 임무가 부과된  상황까지 고려하면 대연정은 다음 대통령의 의무라 할 수 있다.

박근혜정권 적폐청산은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사법기관에 의해  끈질기고  집요하게  추진되어야할 과제이고 다음 대통령은 사법기관들의 적폐청산에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지만 적폐청산이 다음 대통령의 주요 구호와 과제가   된다면  산적한 시대적 과제  해결은 한발짝도 진전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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