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의 영어 제목을 'Bluebeard'로 한 것은 흥미롭다. 물론 복선을 깔고 있다. 블루비어드, '푸른 수염의 사나이'는 서구에선 잔혹범 내지 사이코패스를 상징하는 단어다.
블루비어드는 프랑스 민담에 나오는 인물로 무정하고 잔인한 남성을 상징한다. 아내가 여섯이었는데, 블루비어드는 이 여섯명의 아내를 모두 잔혹하게 살해한다. 이런 연유로 블루비어드는 냉혹하고 변태적인 남편을 일컫는 의미로 지금도 쓰인다.
사이코패스와 잔혹성의 출발점은 교류 단절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줄 친구가 더 이상 없을 때 인간은 자신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10년 주기로 몰아닥치는 경제위기의 여파로 대한민국의 소시민, 특히 가부장적 책임 의식에 물들어있는 소시민 남성들의 정신상황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있다.
불안과 고독에 찌든 한국 소시민 남성이라면 언제든지 여차하면 '욱'하고 '푸른 턱수염의 사나이'가 될 수 있는 정신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경기도의 화정 신도시. 한 때 미제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지역에 들어선 신도시다.
내과의사 승훈(조진웅 분)은 한 때 잘나가던 병원 도산 후 이혼까지 하고 화정 신도시에 있는 선배 병원에 취직한다. 승훈은 원룸에 세를 드는데, 이 원룸 빌딩 주인은 치매아버지 정노인(신구 분)을 모시고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 분)이다.
어느 날, 승훈은 정노인에게 수면내시경 시술을 하는데, 가수면 상태에서 정노인은 충격인 살인 고백 같은 말을 한다. 이 때부터 알 수 없는 공포가 서서히 승훈을 옥죄어 온다.
어느순간 승훈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눈치친다. 한동안 조용했던 신도시에 다시 살인사건이 시작되고 승훈은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승훈을 만나러 왔던 전처가 실종되었다며 경찰이 찾아오는데…
이수연 감독이 '해빙'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안'과 이에 직면하면서 발현되는 인간본성이었다.
이수연 감독은 "두 번의 경제위기가 휩쓸고 간 한국.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이미 무너졌고, 한 번의 실패는 영원한 계층 추락으로 이어져 그 어느 때 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해 가고 있다"고 했다.
'해빙'의 주인공 승훈(조진중 분)처럼 한때 자신이 중산층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수연 감독은 "그리고, 이런 불안과 두려움은 미처 보지 못 하거나 대면하지 않아도 되었던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대면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모습이다"고 진단한다.
그는 "미스터리 심리스릴러인 '해빙'을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어떤 불안을 포착해 보고, 그것으로 인해 확인하게 되는 인간의 본성까지를 다뤄 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영화 속성의 근저인 '재미'에 대한 천착도 극심하게 배려됐다. 이수연 감독은 "무엇보다 끝까지 퍼즐과 의문을 풀어가는, 일종의 단서 놀이의 즐거움을 잊지 않는 장르영화로 완성하고자 했다"고 '해빙'에 베인 관객유인책을 설명했다.
1일 개봉한 ‘해빙’은 첫선을 보인 날 예매율 1위를 차지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일 오전 11시30분 현재 ‘해빙’은 실시간 예매율 33%를 기록했다. 종전 1위 ‘로건’(24.4%)를 제치고 첫머리에 올라섰다.
해빙(Bluebeard)=감독 : 이수연/출연 : 조진웅, 신구, 김대명, 송영창,이청아, 윤세아, 강득종/개봉 : 2017년 3월 1일/러닝타임 : 117분/시청연령 : 15세이상관람가.
저작권자 ⓒ 스타에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