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이란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의 인간내면 파헤치기

EBS 세계의 명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27일(토) 밤 10시 55분

김현주 기자 승인 의견 0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스틸컷.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원제: Le passé)=감독: 아쉬가르 파라디/출연: 베레니스 베조, 타하르 라힘,알리 모사파/제작: 2013년 프랑스, 이탈리아/러닝타임: 130분/나이등급: 15세.
 
영화는 별거 중인 부부가 이혼 재판을 마무리 짓기 위해 4년 만에 다시 만난 상황에서 시작한다. 
아마드(알리 모사파)는 별거 중인 아내 마리(베레니스 베조)와 이혼하고자 파리로 돌아온다. 

마리가 미처 숙박 예약을 해두지 않은 탓에 아마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마리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그런데 마리의 집엔 마리의 약혼자 사미르(타하르 라힘)와 그의 아들이 있다. 그리고 마리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도 그 집에 함께 있다. 사미르의 아내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입원 중이다. 마리의 딸 뤼시는 사미르를 싫어한다. 

게다가 뤼시는 입원 중인 사미르의 아내에게 이상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아마드는 마리와 뤼시, 사미르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에 놓인다.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에서 이야기 자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구성 방식이다. 영화는 가족들의 어색한 관계를 차례로 보여주고, 관계가 어색해지게 된 원인은 각 인물들의 여러 사정을 겹겹이 쌓아 전달하며 관객이 스스로 중심 내용을 추론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사미르의 아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만 짐작이 가능할 뿐, 무엇이 사미르의 아내를 벼랑으로 몰았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인물들이 제각기 고백한 것들 중 하나일 수도 있고, 그 모두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굳이 어떤 교훈을 꺼내고자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후회할 행동은 하지 않을 것', '말 한 마디도 조심해서 할 것' 정도의 문장이 나올 텐데, 영화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복잡성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영어 제목은 '지난 날'(the past)이다. 현재의 상황이 이어지지만 인물들은 모두 과거에 자신들이 행했거나 지나온 어떤 일들에 발목이 묶여 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숨겨져 있던 사실들이 한 꺼풀씩 드러나며 사건의 중심을 향해 간다. 

인물들은 각자 사미르 부인의 자살 기도 원인이 무엇인 지 제 나름대로 추측한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낚시다. 영화 말미까지도 정확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살 기도의 원인이 자신이 지난 날 행한 어떤 일들에 있지 않았을까 지레 짐작하며 두려워하거나 후회하는 인물의 태도다. 

이들 가족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감독은 꼬일대로 꼬인 파편을 관객 앞에 던져 놓고 관객이 진실이 무엇인지 스스로 상상해보기를 바란다. 

이야기의 복잡한 구성은 기교에 그치지 않고 관객이 미스터리의 중심에 다가서도록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계급 차이와 성차별 등 현대 이란 사회의 문제점을 훌륭한 스토리텔링으로 완곡하게 비판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감독 중 하나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 속의 또 다른 이야기로 파고들다 보면 어느새 그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에 닿게 된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는 몇 차례 TV시리즈를 연출한 경험이 있으며, '사막의 춤'(2003)으로 영화 연출 데뷔했다. '사막의 춤'은 제48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각본상을 받았다. 

두번째 극영화 '아름다운 도시'(2004)는 사형수 친구의 사형 집행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쓰고 고민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담았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과 꾸준히 작업하게 되는 타라네 알리두스티가 첫 출연한 작품이다. 

결혼을 앞둔 가사도우미의 심경과 그가 고용된 집의 주인 부부가 시종일관 싸우는 모습을 상반된 무드로 담은 세번째 극영화 '불꽃놀이'(2006)까지도 억압에 대한 투쟁기로만 대표되었던 이란 영화에 있어 일상성을 돌려준 작품이다. 

'어바웃 엘리'(2009)는 제5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했고,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는 제8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는 제6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으며 배우 베레니스 베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그 외 70여 개의 수상을 기록했다. 아쉬가르 파라디의 첫 해외 영화이기도 했다. '세일즈 맨'(2016)은 2016년 제8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EBS 세계의 명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27일(토) 밤 10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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