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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재단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사진-JTBC캡처> |
[스타에이지=이예진 기자] 최태민 최순실 부녀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3년 뒤인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박근혜 대통령과 주변인들을 철저히 관리하며 대통령 만들기에 몰두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저녁 방송된 JTBC 시사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선 최태민과 넷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셋째 아들인 최모씨의 증언을 전했다.
최모씨는 최태민의 다섯째 부인 임선이가 자신이 데리고 온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인 조순제와, 임씨가 최태민과의 사이에서 얻은 최순실 최순득 최순천 등과 이복 남매다. 하지만 최씨는 최태민 최순실 모녀의 재산 형성과정에서는 철저히 배제됐다.
최모씨는 임선이에 대해 “악덕 계모였다”며 “임선이가 최태민 돈을 관리했다. 10.26사태 이후 들어온 엄청난 뭉칫돈에 대해 며 “최순실, 최순득으로 재산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임선이의 재산은 2000억원대로 전해졌다.
최태민과 최순실은 대통령 만들기에 몰두하며, 육영재단을 통해 이를 노골화했다.
최모씨는 최태민이 육영재단을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작은 청와대처럼 만들어 왔다고도 주장했다. 육영재단은 박 대통령의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가 청소년의 복지증진을 위해 1969년 설립한 재단이다.
최씨는 “아버님(최태민)이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나라를 정화를 해야 한다, 여자가 (대통령)하고 나면 세상이 좀 부드러워질 거라는 말씀을 했다”고 말했다.
전 육영재단 직원은 당시 육영재단에서 일했던 직원들이 최태민으로부터 “차기 대통령,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자네들 이사장(박근혜)이 될 것이니 성심껏 잘 모셔라”는 정신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최태민이 1993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교류했던 전기영 목사는 최태민이 유언처럼 남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회고했다. “조흥은행 안국동 지점에 모 기업 회장이 준 13억원이 있는데 이자가 9000만이 따로 있다. 그 돈을 갖고 해라”고 말했다고 했다.
전 육영재단 직원은 최태민이 육영재단 결재서류를 두 개 만들어 풀로 붙이는 일명 ‘봉합 결재’를 했다고도 증언했다. 최태민이 결재한 후 당시 재단 이사장이었던 박 대통령에게 올렸는데박 대통령이 바꿀 수 없게 했다고 했다.또 29년 전 육영재단 100여명의 직원들이 최태민 최순실 부녀의 이권개입 등에 반대하며 퇴진 농성을 하다 80여명이 해고당한 사건도 소개됐다. 이후 육영재단은 유도 선수 출신 등 최태민 측근들로 채워졌다.최순실은 1985년 육영재단으로 들어가 언론사 기자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자신의 운영하는 유치원이 육영재단에서 개최한 사생대회에서 상을 타지 못하면 직원들을 질책했다는 일화도 소개됐다. 최순실은 육영재단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고 했지만 1979년 새마음봉사단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던 최순실의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최태민이 자신의 사진을 못찍게 하는 등 철저한 비밀주의로 외부 인사들을 차단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고 조순제씨는 “(육영재단) 업무에 관해서는 (박 대통령이 최태민의) 100% 꼭두각시”고 말했다.
보다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와 박근령씨가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최태민에게 속고 있는 언니를 구해달라"며 탄원하기도 했다. 지만씨와 근령씨가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의 연락을 끊기 위해 육영재단 직원 30여명과 서울 삼성동 집에서 박 대통령을 데리고 나오는 ‘엔테베’ 작전을 펼치기도 했지만 경찰이 출동해 수포로 된 기록도 공개됐다. 엔테베 작전은 1976년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103명의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이스라엘 특공대의 기습 작전을 일컫는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청와대를 떠나 육영재단으로 온 박 대통령에게 최 씨 일가는 끊어내기 힘든 인연이었다. 최태민은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후 22살 나이에 어머니 역할을 해야 했던 박근혜 대통령 옆의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차지했다.
임선이는 1998년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 입문을 위한 보궐선거 당시 대구에서 박 대통령의 숙식을 챙기며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는 증언도 나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최순실이 임선이의 뒤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일상을 챙기며 대통령을 지배했다.
1990년대 당시 최태민의 횡포를 보다 못해 박정희·육영수 숭모회를 조직했던 이영도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독대하며 최태민을 끊어내라고 했더니 긍정했다. 얼마후 근령씨가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태민의 아들 최모씨는 “그 양반(박 대통령)이 시장가서 팬티 하나 살수 있겠냐”며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청와대를 나와 자기를 해할 수 없는 사람은 최씨 집안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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