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스캔들 원조 최태민, "목사 아니다"....정체가...

이예진 기자 승인 의견 0
최태민씨.

[스타에이지] 국정 농단의 중심에 있는 최순실씨(60) 부친 고 최태민씨(1912~1994)에 대해 기독교계가 '목사’ 호칭을 붙이지 말아 줄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민일보는 25일자 '최태민에 목사 호칭은 부당, 교계 적극 시정 나서야' 사설을 통해
"한국교회는 최씨에 대한 목사 호칭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며 "기독교를 폄하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태민씨가 1975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스스로 강변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라는 교파는 정통 교단이 아니다.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이단 교파일 뿐이다"며 "정부와 정통 교단의 인가를 받은 신학교에서 체계적인 목회자 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인물을 어떻게 목사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했다.

신문에 따르면 최태씨는 불교 승려가 된 적도 있었고,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기도 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다. 자신을 ‘미륵’ ‘단군’이라고 했고 ‘선사’ ‘거사’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등 사교(邪敎)집단의 교주 같은 기행을 일삼았다. 1979년 당시 중앙정보부의 조사 보고서를 보면 많은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음이 드러났다.

최태민씨는 충남계룡산 일대에서 신도를 모으며 사이비 교주 행각을 벌이다 1973년 육영수 여사 사망 후 사실상 퍼스트레이디가 된 박 대통령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 구국선교단을 만들어 스스포 총재로 취임, 박대통령을 앞세워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

최태민의 즉석 제안으로 구국선교단 명예총재로 추대된 박 대통령은 선교단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구국선교단은 1976년 ‘구국봉사단’으로, 1978년엔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최태민 일가의 축재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잠시 주춤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남대와 육영재단 등의 이사장 자리에 앉으면서 다시 시작됐다. 이후 1987년 최순실에 대한 각종 특혜의혹이 불거졌고 박근혜 대통령은 육영재단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최씨는 다섯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다섯째 딸 최순실씨가 자신의 종교적 능력을 이어받은 후계자로 낙점, 무척 아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순실씨는 수천억원대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시가 300억원으로 추정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7층짜리 건물과 강원도 23만여㎡의 목장 등 수백억원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과거 강남구 신사동 또 다른 빌딩과 역삼동 땅, 경기도 하남시 땅도 소유했다.

최순실.

고발뉴스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1988년 매입한 신사동 7층 빌딩에 한동안 거주하다 이사했고 이 자리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2013년 1월부터  2013년 8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나가기 전까지 머물렀다.

이 건물 2층에는 펜싱을 위한 기본 설비가 바닥에 깔려 있고 최씨가 자신의 개인 회사인 더 블루 K의 상무로 있던 고영태 씨와 함께 이곳에서 엘리트 육성 펜싱클럽 사업을 추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 씨는 K스포츠 재단을 앞세워 각종 이권 사업을 추진했으며 펜싱클럽 역시 K스포츠 재단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 씨가 세운 더 블루 K는 독일 현지법인을 통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 블루 K와 주소지가 같은 또다른 회사 비덱은 최근 현지의 3성급 호텔을 인수하기도 했다.

한편, 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씨는 지난 2월 최순실씨를 상대로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스타에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