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촛불집회 날 다시보는 네로시대 로마의 눈물

EBS1 24일 밤 세계의 명화 쿼바디스 방송

강민주 기자 승인 의견 0

[스타에이지] EBS1TV가 24일 밤 '세계의 명화'로 방송하는 <쿼바디스>는 1951년 머린  르로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로마제국 네로 황제 때를 시대적 배경으로 기독교 여인과 로마 장군의 애정과 신앙, 네로 황제의 로마 방화 등을 축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러닝 타임 175분의 <쿼바디스>는 190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스스로를 문화의 수호자이자 예술가로 자처하는 광기 어린 폭군 네로와 그를 에워싼 간신들이 불안한 정세에 대한 타개책으로 기독교인들을 희생양으로 점찍고 대대적인 박해를 벌였던 로마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다. 

기독교인 리지아와 전형적인 로마인이었던 장군 비니키우스의 사랑, 신앙을 위해 저항하지 않고 죽음의 길로 뛰어든 기독교인들의 처참한 죽음, 그리고 네로의 측근이었으나 로마를 누구보다도 사랑했기에 황제에게 맞설 수밖에 없었던 페트로니우스의 이야기를 거쳐, 결국 그 혼돈 속에서 사랑과 믿음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뜻의 쿼바디스(Quo Vadis)란 말은 베드로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를 향해 한 말로 유명하다. 

# 쿼바디스 줄거리

 

브리타니아에서 3년간의 전쟁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온 개선 장군 비니키우스는 황제 네로의 측근이자 관료인 페트로니우스의 주선으로 한 퇴역 장군 플라우티우스의 집에 묵게 된다. 

이곳에서 인질로 로마에 잡혀와 플라우티우스의 양녀가 된 리지아에게 첫눈에 반한 비니키우스는 어떻게든지 그녀를 손에 넣고자 네로에게 직접 청원한다. 

네로의 명으로 비니키우스에게 넘겨진 리지아는 그에게 마음을 뺏기지만, 자신을 지배하려 드는 행태에 거부감을 느낀다. 

결국 황궁 연회장에서 비니키우스의 집으로 가던 길에 리지아는 심복 우르수스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리지아를 찾던 도중에 그녀가 기독교인임을 알게 된 비니키우스는 몰래 기독교 예배에 숨어들고, 이곳에서 우르수스와 격투를 벌이다가 상처를 입는다. 

기독교인들의 간호로 정신을 되찾은 그는 리지아와 재회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기독교를 버릴 수 없다는 리지아에게 분노해 그녀와 결별하고 숙부 페트로니우스가 있는 안티움으로 향한다. 

비니키우스는 자신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황후 포파에아로부터 리지아와 다시 만날 시에 두 사람 모두 파멸시키겠다는 협박을 듣는다. 

한편, 자신의 예술적 천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광기 어린 황제 네로는 로마를 모두 불태우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실행한다. 

로마가 불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비니키우스는 리지아를 구하기 위해서 로마로 달려가고, 황후 포파에아는 그에 대한 증오심에 불탄다. 

순식간에 집과 가족을 잃은 로마 시민들은 네로를 처단하기 위해 황궁으로 몰려든다. 궁지에 몰린 네로는 황후의 사주를 받고 기독교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로 한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하고 고통 받는 가운데, 리지아 역시 비니키우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장에서 죽음에 처할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우르수스와 충성스러운 부하들의 도움으로 비니키우스는 리지아를 구출하고 로마 시민들에게 갈바 장군이 네로를 끌어내리기 위해 곧 로마로 입성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로마 시민들이 네로가 방화범임을 확신하고 폭동을 일으키자, 벼랑 끝에 몰린 네로는 결국 황후를 살해하고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 쿼바디스 작품성, 감독

<쿼바디스>는 작품상, 미술상, 음악상, 남우조연상(네로 역의 피터 유스티노프와 페트로니우스 역의 리오 겐), 촬영상, 의상상 등 미국 아카데미상 7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이 가운데 광기 어린 자아도취의 절정을 보여준 네로 역의 피터 유스티노프는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이탈리아에서 전부 촬영을 진행하면서 ‘테베레 강의 할리우드’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는데, 이는 이탈리아 현지 제작이 흥했던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 

단 한 작품에 무려 3만2000벌의 의상이 사용될 정도로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며, 막대한 엑스트라와 세트를 들인 로마 대화재 장면이나 후반부의 기독교 박해 장면, 검투 경기장에서 열린 최후의 싸움은 웅장함을 자랑한다. 

또한 음악을 담당한 미클로스 로자는 실제 고대 그리스 음악을 곳곳에 차용해 씀으로써 시대적 분위기를 살리려 노력했다. 
 
<쿼바디스>를 연출한 머빈 르로이 감독은 1900년 10월 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1906년 지진으로 집안이 어려워지자 신문팔이로 나서는 등 어린 나이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연예 쇼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극단이 해체되자 할리우드로 향했다. 

카메라 어시스턴트와 의상실 보조 등을 거쳐 무성영화 각본가로 활동하던 그는 1927년 <노 플레이스 투 고>로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적은 예산으로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영화계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31년에는 에드워드 G. 로빈슨을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게 만든 영화 두 편 <파이브 스타 파이널>과 <리틀 시저>를 감독하면서 제작자 겸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1938년에는 MGM의 프로덕션을 총괄하게 되었다. 그가 감독한 작품으로는 <1933년의 황금광들(1933)>, <애수(1940)>, <작은 아씨들(1949)>, <쿼바디스(1951)>, <나쁜 씨(1956)>, <악마의 4시(1961)> 등이 있으며, <오즈의 마법사(1939)> 제작자로서도 활약했다. 

르로이가 발굴한 스타로는 클라크 게이블, 로레타 영, 로버트 미첨, 라나 터너 등이 있다. 1965년에 영화계에서 은퇴한 후, 1987년 캘리포니아에서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방송 24일 밤 10시45분 EBS1TV 

사진=쿼바디스 포스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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